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데렐라 콤플렉스 (문단 편집) === 역사적 측면 === '''신데렐라는 [[금수저|태생부터가]] [[귀족]]이었다. ''' 신데렐라가 평민이라면 어떻게 그 시대에 왕궁 무도회 예절을 알고 있고 왕자와 같이 춤까지 췄을까? 그리고 아무런 제재도 없이 [[왕족]]과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즉, 절대다수의 신데렐라 콤플렉스 보유자와는 다르게 신데렐라는 상류층의 예절과 행동양식을 어려서부터 몸에 익혔던 귀족 출신이 맞다고 할 수있다. 집안의 뿌리부터가 진성 귀족이라는 소리다. 신데렐라의 배경이 되는 [[중세]] 귀족사회 때는 아예 대놓고 [[귀천상혼]]이라는 관습으로 인해 같은 등급의 집안끼리의 혼인으로 태어난 자식이 아니면 정상적으로 재산 상속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이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따져보려면 신데렐라의 판본 자체가 다양함을 생각해야 된다.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딱히 원전이 없고, 각지의 민담을 수집해서 정리하는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판본에 따라 신데렐라와 왕자의 신분에 대한 설명 자체가 상이한 경우가 많다. 애초에 같은 판본 내에서라도 현대 설덕들을 만족시켜줄 만큼 설정의 정합성을 따진 것도 아니다. 신데렐라의 신분만 해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고 설정된 판본[* [[그림형제]]판 아셴푸틀(Aschenputtel)]이 있는가 하면 귀족의 딸이라거나, 아예 공작의 딸이라고 나온 판본도 있다. 또한 왕자의 신분 역시 진짜 왕자라는 판본, 귀족 자제라는 판본도 있다.[* 위에서는 신데렐라가 [[백작]] 영애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신데렐라]] 항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그냥 한국 웹에 퍼진 소문이다. 샤를 페로 버전에서는 그냥 귀족(Gentilhomme)의 딸이라고 나온다. [[프랑스어]] Gentilhomme은 혈통 있는 귀족 신분을 의미하는 말로, [[영어]] [[젠틀맨]]이나 이를 번역한 [[신사]]와는 좀 다르다. 영어 젠틀맨은 [[젠트리]]의 한 부류에서 온 말이라 진짜 귀족보다는 아래 신분을 의미해서 신사로 번역하는게 어울리지만, 프랑스어 장티옴은 노빌리스와 거의 동의어이다. 따라서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는 작위는 불명이지만 그냥 고귀한 귀족 출신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따라서,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이 진짜 가능한지 따지려면 각각 서로의 신분에 따른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신데렐라가 가난한 집의 딸이라는 설정의 판본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었는지도 찾아내서 해당 시대와 지역의 법률이 어떠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는 전세계에 걸쳐서 다양한 판본이 있으나 특정하지 않는다면 기준이 없어서 가정 자체가 무의미해지므로, 현대에 알려진 샤를 페로 버전이나 그림 형제의 버전의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 우선 신데렐라의 시대적 배경은 아무리 빨라도 [[르네상스]] 시절이라고 봐야 하며 그보다는 [[근세]], 혹은 [[근대]] 초기(Early Modern)로 보는게 옳다. 아마도 샤를 페로가 신데렐라를 집필한 시기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이 적절할 것이다. 이유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핵심 이벤트인 궁정무도회(Ball)라는 관습이 중세 봉건시대가 아니라 [[절대왕정]] 시대의 관습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중세의 국왕들은 자기 직할령이라면 모를까, 왕국내 귀족들 무시하고 다른 영지 처녀들을 왕궁에 불러모을 수 있을 만큼 권력이 막강하지도 않았다. 최초로 무도회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건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 시절인 14~15세기이고, 신데렐라에서처럼 궁정에 귀족들을 불러모아 여는 무도회는 17세기 초부터다.[* 다만, 중세에도 춤 추는것 자체는 교회가 주도하는 축일이나 축제 등에서 성행했다.[[https://www.oxfordbibliographies.com/view/document/obo-9780195396584/obo-9780195396584-0121.xml|#]]] [[중세]] [[봉건주의|봉건]] 귀족들은 자기 영지에 틀어박혀서 영지를 다스리느라 바빴고, 전쟁으로 소집할 때만 빼고는 국왕을 평생 동안 만나는 것도 거의 두어번이나 될까말까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던 것이 근세에 이르러 왕권이 강화되면서 봉건 귀족들이 영지의 군사권을[* 경우에 따라서는 조세권까지 반납한다.] 반납하고 고급관료화가 되면서 국왕이 살고 있는 수도 근처에서 모여살도록 되었는데, 그에 따라 왕족과 귀족들간에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생긴 풍습이 바로 궁정무도회다. 따라서 신데렐라의 영지 상속권을 두고 영주들 간에 내전이 벌어지니 하는 이야기는, 중세라면 모를까 근세라면 거의 불가능한 소리다.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서 병력을 모을 수도 없다. 설사 그랬다간, 국왕이 십수만의 [[상비군]]을 보내서 영주들을 반역이랍시고 모조리 끌어내서 박살을 낼 것이다. 근세 [[유럽]] 왕실의 결혼은 [[귀천상혼]]을 철저히 지킨 [[정략결혼]]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결혼 동맹을 위해서 외국 지배 가문의 여식과 결혼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일반 귀족의 경우 그냥 귀천상혼만 따져서 지배 가문[* 영주로써 통치권을 가진 가문.] 출신인 경우와 그냥 신분과 지체가 있는 귀한 집 자식의 경우 정도로만 보면 되지만, 왕자의 경우는 여기에 더해 결혼 동맹까지 겹쳐져 문제가 복잡했다. 특히 신부의 신분도 중요하지만 왕자의 계승권 순위도 중요했다. 만약 왕자의 계승권이 높은 상황이면 최소한 독립된 [[공국]] 정도의 지배 가문 여식이 아닌 경우에는 정실결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신데렐라가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공국 통치자의 딸이었다면 흠잡을 데 없는 [[프린세스]]고 구박을 받고 살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이야기 자체가 진행이 안 된다. 게다가 계승권 높은 왕자는 결혼 동맹과 정치적인 이유로 진작에 결혼 상대가 결정되니 며느리 찾기 위해 무도회를 여는 경우는 없다. 반면 왕자의 계승권이 낮아서 사실상 왕위계승이 어렵다면, 그냥 왕국내 [[백작]]위 여식 정도만 되어도 결혼은 가능했다. 다만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신데렐라가 지배가문 출신 귀족인 경우는 그나마 인정받기 쉬웠겠지만, 지배가문 출신이 아닌 경우에는 결혼 자체를 인정받는 정도는 가능했더라도 [[귀천상혼]]의 댓가로 왕자가 계승권을 아예 포기당하거나, 왕자와 신데렐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신부에게 내려질 작위 정도의 계승 자격만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라예보 사건]]의 희생자로 유명한 [[프란츠 페르디난트|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부부. 조피는 통치 가문이 아닌 백작의 딸이었기 때문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후계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귀천상혼]]으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의 자식들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어머니의 호엔베르크 공작위만 물려받았다.] 어차피 계승권 낮은 왕자에게도 보통 [[공작(작위)|공작]]이나 백작 작위가 주어지고, 이 작위에 맞춰서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귀천상혼 배제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지키는 거다. 정실 왕자가 공작도 아니고 백작 작위 받는게 흔한 일이 아니라 왕자 아내가 백작 여식인 경우가 드문 것뿐. 다만 적출 왕자가 아닌 인지된 [[사생아]] 왕자의 경우에는 백작 작위 받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이런 경우도 꽤 흔하게 있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왕 [[제임스 2세]]의 인지된 [[사생아]]이자 유스턴 백작(나중에 그래프턴 공작이 됨) 헨리 피츠로이가 알링턴 백작 여식과 결혼했다. 이 사람이 훗날의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직계 조상이다. 근대 유럽, 특히 [[프랑스]] 왕궁에서는 별의별 이유로 궁정무도회가 벌어지는 것은 무척 흔한 일이었고, 1660년 기준으로 [[프랑스 파리]]에 댄스교습소가 200개나 있을 정도였다.[* 출처: Ballet in Western Culture: A History of Its Origins and Evolution p72 저자 Carol Lee] 그리고 위에 형들이 많아서 계승권 낮은 왕자라도 왕자는 왕자라 정실 왕비의 자식일 경우에는 공작 작위가 주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루이 14세]]는 왕위 계승권이 낮은 게 아니라 사실상 없는 [[사생아]] 아들 루이 오귀스트한테도 3살 때 자기 자식으로 인지해주고 멘(Maine) 공작 작위를 주었다. 물론 이 사람도 공작이니 나중에 결혼할 때 귀천상혼에 따라 [[부르봉 왕가]] 종친으로 혈통친왕 작위를 갖고 있는 공작 여식과 결혼했다.] 왕국 내 '모든' 처녀를 수사적 표현으로 본다면, 어차피 숱하게 여는 무도회인데 왕이 총애하는 왕자이자 공작의 결혼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주요 귀족 처녀들 불러모아서 무도회 한 번 더 하는게 불가능할 건 없다. 만약 신데렐라가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면 결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 정부(情婦)로 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경우 신데렐라의 남편이 될 남자는 왕자가 아니라 부유층의 아들이었다는 쪽이 가장 아귀가 맞는다. 실제로 비귀족 출신 왕비는 유럽 역사를 통틀어 아래 항목에 나온 사례가 거의 전부다. 그 밖에 [[폴란드]]의 대왕으로 불리는 [[카지미에시 3세]]의 3번째 부인인 크리스티나 로키자나가 상인의 딸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